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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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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마무리하며... 프로그래머로서 인정받지 못 했지만 강사로서는 인정받는 한 해 한 해를 보냈다. 몇 번이나 그만둔다고 말했었다. 이직하려고 한 적도 있다. 결국 안 하고 한 곳만 계속 다녔다. 가끔은 후회되기도 하고 가끔은 감사하다. 일하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혹시 그 곳에서 말을 바꿀진 모르겠으나 일단은 돌아간다. 다만 개발, 프로그래밍이 아닌 클라우드 분야라서 여러모로 불안하다. 일단 컴퓨터를 전공했고 간접적으로 나마 리눅스 등을 본 경험은 있기에 학생들을 가르칠 순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잘 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아쉬운 건 쉬면서 많이 해이해져서 생각보다 자기계발을 많이 못 했다. 일단 개발자 출신의 강사라는 정체성을 계속 지켜가게 됐다. 무직으로 지내보니 좋기도 했지만 아내한테 미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
11월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25년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24년 9월 12일 나는 지금 다니는 곳을 그만뒀다. 프로그래머로 돌아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 강사를 하겠다는 이유도 아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 같다. 예를 들어서 C#으로 취업을 하고 싶은 데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 지,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 지 물어본다면 얼마든 지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C# 업체에 학생을 취직, 아니 그 회사에 지원하게 설득하는 건 정말 다른 문제 같다. 누군가에게 강요하고 설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쉽지 않다. 미래를 알 수 없기에 그 학생에게 어떤 것이 최선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마음의 병이 좀 생긴 것 같다.  쉼표가 필요했다. 쉼이 필요했다. 또한 현재 인터넷 강의들을 찍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인터넷 강의가 단기간에 돈을 더 많이 버는 것..
프로그래머와 강사, 둘 중 하나만 해야 할까? 애초에 오라고 한 적도 없는 곳을 고민하는 것도 웃긴다.2024.07.11 -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完)] - 나는 왜 다시 프로그래머를 고민할까? 나는 왜 다시 프로그래머를 고민할까?개발자로서 인정받은 적이 없다. 퇴사할 때 날 잡은 사람도 없고 나 역시 후회없이 그만뒀다. 다시는 개발자로 돌아갈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하던가? 직전 회사에 대xenoint.tistory.com  프로그래머 자체에 대한 미련은 없다. 강사로서 뭔가 스스로 정체하고 있다는 기분은 지울 수 없다. 프로그래머로서의 치열함, 발전을 강사로서도 분명 경험할 수 있다. 강사로서의 뿌듯함과 역동 역시 프로그래머로서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 둘 다 동시에 할 수 없지만 어떤 면에선 둘 다 동시..
나는 왜 다시 프로그래머를 고민할까? 개발자로서 인정받은 적이 없다. 퇴사할 때 날 잡은 사람도 없고 나 역시 후회없이 그만뒀다. 다시는 개발자로 돌아갈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하던가? 직전 회사에 대한 미련이 갑자기 남는다. 이제 돌아가면 다시 잘할 수 있을까? 그 때 몰랐었던 것들을 지금은 많이 안다. 옛날에 비해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많이 높다. 이젠 운전도 할 줄 안다.  뭔가 형편없는 점수를 받은 과목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재수강을 고민하는 학생같다. 프로그래머 자체에 대한 미련은 없는 데, 직전 직장에 대한 미련은 남는다. 내가 지금 벌려놓은 일들 때문에 조만간 인터넷 강의들 많이 찍어야 할 것이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지금 일이 적성에 안 맞는 건 아니다. 다만 일에 대한 미련이 남는 것 같다. 전국, 전..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8)(완결) 병역특례를 할 때 GPAD를 깨버린 적이 있었다. 회사 비품을 고장냈다고 개인이 무조건 물어내진 않는다. 회사에 따라 다른 걸로 안다. 근데 그 때의 난 그냥 내 돈 20만원을 날려서 GPAD를 고쳤다. 아무도 내게 돈을 주진 않았다. 그냥 잘했단 말만 들었다. 흡착기 장비를 제어하면서 예외처리를 못 해 특정 부품을 고장냈다. 그 것도 바보같이 5분 새에 2개를 작살내놨다. 멘탈이 다 부서졌다. 곧장 아내한테 전화를 했다. 울먹이며 여길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청내공이 있으니 참으라고 했다. 아마 물어내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너같은 실수 한 사람 또 있었을 것이라며 날 달랬다. 지금 생각하니 참 어렸다. 아내도 일하느라 힘들었을텐데 침착히 날 달래줬다. 물론 이 사건은 지금도 아내의 안주거리이..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7) 좋았던 기억은 많다. 시간이 무한정 주어진다면 더 많이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멕시코에서나 인도에서나 즐거운 기억들이 대다수이다. 일이 잘 안 풀려서 출장이 연장될까봐 조마조마했지만 위기들을 잘 넘겼던 것 같다. 두 번째 멕시코 출장에선 출장이 몇 주 연장됐지만 그 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다른 직원들도 모두 발이 묶이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국내 출장에서 장비 하나를 맡게 됐다. 흡착기였는 데, 이 장비때문에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예외처리 못 해서 장비가 부서지는 걸 눈앞에서 보기도 했다. 어떤 경우엔 내가 가고 나서 장비가 부서진 경우도 있다. 센서 문제인 경우도 있었고 내 잘못인 경우도 있었다. 이 장비 때문에 엄청 많이 끌려갔고, 그 공장에서 잠도 많이 잤다. 나중엔 그 공장 통근 버스로 ..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6) 내가 입사하고 5년 뒤 결국 내 제자 한 명은 이 회사에 입사했다. 내 제자가 그만두기 전까진 인간적으로 이 시리즈를 끝마쳐야 겠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여기서의 기억들은 하나 하나 모두 소중하다. 힘들었던 기억들 역시 내겐 소중하다. 쓴뿌리였던 기억도 소중하다. 쓴뿌리의 원인들이 제거된 것도 있고 이젠 더이상 쓴뿌리가 아닌 것들도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입사할 당시만 해도 난 강사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감개무량하다. 5년전 내게 지금 이야기를 하면 전혀 안 믿을 것 같다. 입사할 때 난 그만큼 자존감이 낮았다. 입사하고 처음이 가장 즐거웠다. 그 뒤엔 좀 힘들었지만 견딜만 했다. 처음엔 날 포함해서 세 명의 신입사원이 있었다. 개발이 아닌 분까지 하면 총 4명이다. 우리 넷은 ..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5) 이제 내 직전 회사 이야기를 해보자. 이 회사는 C#과 MFC를 주로 하며 예전엔 VB도 다뤘다고 한다. 구직 기간 동안 총 3 곳의 회사를 면접 봤다. 한 군데에선 나를 마음에 들어 했으나 내가 싫었다. 또 한 군데는 나도 거기가 싫었고 거기도 날 불합격시켰다. 퇴사 예정일은 다가 오고, 마지막 회사를 면접보게 된 것이다. 그 마지막 회사가 나의 직전 회사다. 여기까지 안 되면 백수가 된 상태로 구직해야 했다. 잡플래닛을 보니 이 곳은 평이 별로였다. 솔직히 이름부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가 교직원으로 지냈던 곳과 영어 이니셜이 똑같으니 더 싫었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더 이상은 실력 좋다는 거짓말은 하기 싫었다. 실력이 없는 걸 솔직히 말하고 대신 열심히 하겠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다. 나쁜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