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完) (19) 썸네일형 리스트형 에필로그 글을 완결하고 2년이 지났다. 지금은 프리랜서 강사로 지내고 있다. 딱 강의만 하고 있다. 강의 자료들도 좀 쌓여 있고 내공도 쌓여 있다보니 강의 자체는 이제 어렵지 않고 오히려 재밌을 때가 더 많다. 정규직 강사로 4년 정도 일을 하고 그만뒀다.정규직 시절에는 강의만 하지 않았다. 모집, 수료 관리, 취업 관리도 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것도 사실이지만 나 역시 나름대로 애썼던 시간들이었다. 학생 관리가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인지, 혹은 내 말대로 안 따라주는 학생들이 미웠던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 지 모르겠다.아니면 그냥 내가 끈기가 부족한 사람인지라 쉬고 싶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요즘은 아내 얼굴 마사지 해주는 게 재밌어서 피부 마사지 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다시 프로그래머로 돌아갈까 생각도 ..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8)(완결) 병역특례를 할 때 GPAD를 깨버린 적이 있었다. 회사 비품을 고장냈다고 개인이 무조건 물어내진 않는다. 회사에 따라 다른 걸로 안다. 근데 그 때의 난 그냥 내 돈 20만원을 날려서 GPAD를 고쳤다. 아무도 내게 돈을 주진 않았다. 그냥 잘했단 말만 들었다. 흡착기 장비를 제어하면서 예외처리를 못 해 특정 부품을 고장냈다. 그 것도 바보같이 5분 새에 2개를 작살내놨다. 멘탈이 다 부서졌다. 곧장 아내한테 전화를 했다. 울먹이며 여길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청내공이 있으니 참으라고 했다. 아마 물어내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너같은 실수 한 사람 또 있었을 것이라며 날 달랬다. 지금 생각하니 참 어렸다. 아내도 일하느라 힘들었을텐데 침착히 날 달래줬다. 물론 이 사건은 지금도 아내의 안주거리이..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7) 좋았던 기억은 많다. 시간이 무한정 주어진다면 더 많이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멕시코에서나 인도에서나 즐거운 기억들이 대다수이다. 일이 잘 안 풀려서 출장이 연장될까봐 조마조마했지만 위기들을 잘 넘겼던 것 같다. 두 번째 멕시코 출장에선 출장이 몇 주 연장됐지만 그 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다른 직원들도 모두 발이 묶이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국내 출장에서 장비 하나를 맡게 됐다. 흡착기였는 데, 이 장비때문에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예외처리 못 해서 장비가 부서지는 걸 눈앞에서 보기도 했다. 어떤 경우엔 내가 가고 나서 장비가 부서진 경우도 있다. 센서 문제인 경우도 있었고 내 잘못인 경우도 있었다. 이 장비 때문에 엄청 많이 끌려갔고, 그 공장에서 잠도 많이 잤다. 나중엔 그 공장 통근 버스로 ..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6) 내가 입사하고 5년 뒤 결국 내 제자 한 명은 이 회사에 입사했다. 내 제자가 그만두기 전까진 인간적으로 이 시리즈를 끝마쳐야 겠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여기서의 기억들은 하나 하나 모두 소중하다. 힘들었던 기억들 역시 내겐 소중하다. 쓴뿌리였던 기억도 소중하다. 쓴뿌리의 원인들이 제거된 것도 있고 이젠 더이상 쓴뿌리가 아닌 것들도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입사할 당시만 해도 난 강사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감개무량하다. 5년전 내게 지금 이야기를 하면 전혀 안 믿을 것 같다. 입사할 때 난 그만큼 자존감이 낮았다. 입사하고 처음이 가장 즐거웠다. 그 뒤엔 좀 힘들었지만 견딜만 했다. 처음엔 날 포함해서 세 명의 신입사원이 있었다. 개발이 아닌 분까지 하면 총 4명이다. 우리 넷은 ..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5) 이제 내 직전 회사 이야기를 해보자. 이 회사는 C#과 MFC를 주로 하며 예전엔 VB도 다뤘다고 한다. 구직 기간 동안 총 3 곳의 회사를 면접 봤다. 한 군데에선 나를 마음에 들어 했으나 내가 싫었다. 또 한 군데는 나도 거기가 싫었고 거기도 날 불합격시켰다. 퇴사 예정일은 다가 오고, 마지막 회사를 면접보게 된 것이다. 그 마지막 회사가 나의 직전 회사다. 여기까지 안 되면 백수가 된 상태로 구직해야 했다. 잡플래닛을 보니 이 곳은 평이 별로였다. 솔직히 이름부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가 교직원으로 지냈던 곳과 영어 이니셜이 똑같으니 더 싫었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더 이상은 실력 좋다는 거짓말은 하기 싫었다. 실력이 없는 걸 솔직히 말하고 대신 열심히 하겠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다. 나쁜 평..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4) 이제 내가 직전에 일한 회사의 이야기를 할 차례다. 난 여기서 2년을 근무하였다. 그 전에 교직원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조금만 더 적어보고자 한다. 이 시리즈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계속 놀라는 중이다. 나중에 책으로 내거나 브런치로 내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 사람들이 좋아하면 돈도 벌 수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욕심도 부려본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명필가 분들은 많다. 그 분들에 비하면 내 글은 글로 된 똥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재미나 위로를 느끼며, 또한 나 역시 이 글을 쓰며 공감을 받고 싶기에 글을 적는다. 앞의 글에서 교직원 생활에 대해 적은 부분 중, 같이 점심먹고 수다떠는 게 즐겁다는 말을 했었다. 이게 처음엔 좋았는 데, 관계가 틀어지고 나니 이 것 만큼 ..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3) 12월 31일 권고 사직을 받고, 이직할 시간이 주어졌다. 감사하게도 내가 이직할 시간을 충분히 주겠다고 하여서 편하게 면접을 여기저기 다녔다. 사람인, 잡코리아 그리고 인쿠르트를 가입하고 여러 회사를 둘러 보았다. 어딜가든 못할 것 같기에 이대로 주저 앉고 싶었다. 1월 31일까지만 다니고 그만뒀는 데, 내가 원한다면 시간을 더 주고 싶어하기까지 했다. 생각할 수록 마음이 훈훈하다. 구직이 시작되자, 내가 그만둔 그 스타트업이 너무 생각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구직전부터 계속 생각났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랑 일하면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연봉 역시 만족스러웠기에 계속 생각이 났다. 내가 보기엔 그 곳은 매우 잘 될 곳 같았다. 어쨌든 기도했었을 당시에 그 곳에서 계속..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2) 결과적으로 나와 팀장님은 웃으면서 헤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분이나 같이 일했던 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 분들은 그 곳이 맞는 곳이고, 나는 그 곳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계속해서 글을 이어나가 보자. 첫 회식때 난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며 빠지려고 했다. 사실 머리가 아픈 건 아니었고, 금요예배 가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빨리 퇴근해서 아내랑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교직원은 그래도 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저찌 회식에 가게 되었다. 아내한테 말하니 얼른 가라고 해서 갔다. 술을 권했으나 마시지 않았고, 2차는 커녕 팀장보다 먼저 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 팀장님의 표정이 안 좋았는 데 난 그걸 애써 외면했다. 나는 교직원이나 공무원을 좋아.. 이전 1 2 3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