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完) (19) 썸네일형 리스트형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1) 합격 전화를 받고, 그냥 거절해버릴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전화해 주신 분이 나랑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하셨다. 게다가 고민할 시간도 충분히 준다고 하시니 이 부분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스타트업 회사는 졸업 하고, 근로장학생 끝내고 오겠다는 나를 하루라도 빨리 데려오려고 하였다. 그리고 뭔가 급해 보였다. 한 쪽은 조급해보이고 한 쪽은 느긋해 보인다. 그러니 느긋한 곳에 끌렸다. 나를 비싼 연봉에 모셔오신 사장님께선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있길 바랐다. 하지만 난 그 값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만둘 땐 내 적성 타령을 하며 그만두었다. 그리고 교직원 생활이야 말로 딱 내 적성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아름다운 마무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추후에 우린 다시 만나게 되며, 사장님은 그 때의 원수(?)를..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0) 교직원 면접도 꽤 잘본 것 같았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박수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면접관님들도 내게 굉장히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발표는 나지 않았다. 역시 교직원의 벽은 높다고 생각하며, 스타트업에 출근하기로 하였다. 신생 회사 특유의 분위기에 설렜다. 병특에서의 고생이 드디어 보상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난 웹을 전혀 모르는 사람인 데, 웹 페이지 구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워드프레스나 윅스 같은 걸로 구축할 것을 말했으나, 반려되었다. 그런 프레임워크를 쓰면 커스터마이징이 어렵고 느리다는 이유였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리고 사장이 생각하는 내용이 내겐 너무 어려웠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그렇다. 난 팀..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9) 대학원 스토리가 거의 끝났다. 간단하게만 말하자면 난 학회 복이 좀 있는 편이었다. 산업기능요원하기 전에도 제주도와 프랑스를 다녀온 기억이 있다. 프랑스 니스에 갔는 데, 이 때 기억이 진짜 너무 좋아서 박사도 하려고 하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 했다. 영어라도 열심히 했더라면 미래가 달라졌을까? 모르겠다. 허접한 논문 써서 제주도도 다녀오고, 방장형이 자기 논문의 2저자로 챙겨줘서 팔자에도 없던 프랑스를 다녀왔다. 이 시기에 알게된 프랑스 선교사님과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살면서 프랑스 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때의 추억 역시 내 보물 중 하나다. 청년취업아카데미라는 곳에서 교육생을 모집했다. 취업 관련 교육이라니 나도 참석했다. 설문지를 하길래 난..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8) 모든 글에는 형식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 논문은 더욱 그랬다. 어떤 학교에서 누가 썼든 간에 석사학위논문인 이상 그에 맞는 격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난 그 부분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생각나는 데로 갈겨 적었다. 결과는? 당연히 핀잔을 들었다. 학부생 기말고사 레포트 만도 못 하다는 말을 들었고, 이건 논문이 아니라고 한다.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논문을 전부 찢어버리고 혼자서 욕설도 했다. 이 때 대학원을 포기하려고 했다.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다 내가 잘못했다고 한다. 그게 더 기분나쁘고 자존심이 상했다. 온갖 원망과 나쁜 생각들이 들었다. 그냥 때려치려고 했다. 아내한테 여러모로 미안하다. 난 툭하면 뭔갈 그만둔다고 말했다. 요즘도 그러는 편이다. 아니 요샌 아내가 그만두라고 말해주는 편이다. ..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7) 이 시리즈가 이렇게 길어질 준 몰랐다. 난 P이기도 하고, 폭발형이기도 하니 삘받을 때 얼른 써놔야겠다. 근데 이렇게 쓰다보니 중간중간 놓치게 되는 재밌는 일화들을 쓸 기회가 없어서 아쉽다. 이 것들도 나중에 꼭 써야지. --- 대학원 복학 전 교수님을 찾아뵀다. 원래 연구실 문화는 평일은 9 to 10이었고 토요일은 9 to 6였다. 빨간날만 쉬게 해줬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방장형까지 졸업했고, 나머지 동기들은 자퇴해서 아무도 없었다. 파트타임하는 분 1명만 있었고, 내가 복학하게 된 것이다. 결혼 당시 화환도 보내주셨기에 그에 대한 감사 인사도 드렸다. 그리고 이번에 복학 예정인데, 이전처럼 풀타임 생활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을 하기도 했고, 생계문제도 있다고 했다. 물론 전부 핑계다. ..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6) 내 연봉은 1690이었고, 이 마저도 퇴직금 포함이었다. 참고로 난 바보같게도 면접 당시 연봉도 모르고 입사를 했다. 어쨌든 석사때랑은 다르게 돈을 벌긴 버는 거니 말이다. 난 나 나름대로 합리적인 연봉을 불렀다. 2500~2600을 불렀다. 유니티개발자분이 2400-2600을 부르셨으니 비슷하게 받으려고 했다. 그 당시 회사에선 유니티로 된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었고 안드로이드나 Java, C#, WPF가 주였다. 그리고 유니티 개발자분이랑 나랑 경력도 비슷했다. 그러니 이정도는 받을 줄 알았다. 내 사수만큼 잘하진 않았지만 나름 유지보수도 열심히 했고, 프로젝트도 쳐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장은 회사의 포텐셜을 말하면서 2300을 재시하였다. 아마 그 것도 술먹고 나랑 카톡했던 걸로 기억한다. 난..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5) 결국 야근에 야근을 거듭했다. 마감일이 0시였는 데, 기적적으로 0시 되기 직전에 데이터를 보냈다. 그냥 조작해버릴까 했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도하고 시도한 끝에 결국 해냈다. 역시 난 천재였어 개발자는 이 맛에 하는 거지 이런 자아도취에 취했다. 이 시기가 제일 재밌었다. 왜냐면 프로젝트도 큰 고비 넘겼고, 새로 오신 분들이랑 너무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꽤 고참 위치에 올라가서 그런지 사람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조금 어려운 분도 있었지만 다행히(?) 더 좋은 곳 찾아 가셨다. 난 자바 안드로이드 개발자였다. 이 시기에 사장은 유니티에 꽂혀서 유니티 개발자를 모셔왔다. 웃긴 건 그 분 면접은 나랑 나랑 경력이 비슷했던 c# 개발자 분이 진행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연..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4) 중간 중간 많은 이야기들을 생략했다. 나를 힘들게 한 그 분 덕분에 내 실력이 오른 것도 사실이고, 큰 문제들도 많이 해결되었다. 이건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며, 지금의 나도 그 때의 그 분만큼 못할 것 같기에, 그 분을 존경하긴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모바일팀이 이제 나 혼자가 된 것이다. 편한 점도 있었다. 이 시기가 되니 어려운 사람도 별로 없고(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웬만하면 칼퇴를 할 수 있었다.(대신 월급이 가끔 밀렸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눈치 안 보고 놀기도 했다. 근데 내가 내 사수보다 못 하긴 했나보다. 사장한테 인정받았던 적은 별로 없었다. 내가 기초적인 IT 상식이 좀 부족하다보니 더 무시당하기도 했다.(서버를 노트북으로 돌릴려고 하거나, 공유기를 허브 겸용으로 쓸 수 있단 사..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