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完) (22) 썸네일형 리스트형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4) 이제 내가 직전에 일한 회사의 이야기를 할 차례다. 난 여기서 2년을 근무하였다. 그 전에 교직원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조금만 더 적어보고자 한다. 이 시리즈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계속 놀라는 중이다. 나중에 책으로 내거나 브런치로 내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 사람들이 좋아하면 돈도 벌 수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욕심도 부려본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명필가 분들은 많다. 그 분들에 비하면 내 글은 글로 된 똥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재미나 위로를 느끼며, 또한 나 역시 이 글을 쓰며 공감을 받고 싶기에 글을 적는다. 앞의 글에서 교직원 생활에 대해 적은 부분 중, 같이 점심먹고 수다떠는 게 즐겁다는 말을 했었다. 이게 처음엔 좋았는 데, 관계가 틀어지고 나니 이 것 만큼 ..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3) 12월 31일 권고 사직을 받고, 이직할 시간이 주어졌다. 감사하게도 내가 이직할 시간을 충분히 주겠다고 하여서 편하게 면접을 여기저기 다녔다. 사람인, 잡코리아 그리고 인쿠르트를 가입하고 여러 회사를 둘러 보았다. 어딜가든 못할 것 같기에 이대로 주저 앉고 싶었다. 1월 31일까지만 다니고 그만뒀는 데, 내가 원한다면 시간을 더 주고 싶어하기까지 했다. 생각할 수록 마음이 훈훈하다. 구직이 시작되자, 내가 그만둔 그 스타트업이 너무 생각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구직전부터 계속 생각났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랑 일하면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연봉 역시 만족스러웠기에 계속 생각이 났다. 내가 보기엔 그 곳은 매우 잘 될 곳 같았다. 어쨌든 기도했었을 당시에 그 곳에서 계속..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2) 결과적으로 나와 팀장님은 웃으면서 헤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분이나 같이 일했던 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 분들은 그 곳이 맞는 곳이고, 나는 그 곳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계속해서 글을 이어나가 보자. 첫 회식때 난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며 빠지려고 했다. 사실 머리가 아픈 건 아니었고, 금요예배 가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빨리 퇴근해서 아내랑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교직원은 그래도 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저찌 회식에 가게 되었다. 아내한테 말하니 얼른 가라고 해서 갔다. 술을 권했으나 마시지 않았고, 2차는 커녕 팀장보다 먼저 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 팀장님의 표정이 안 좋았는 데 난 그걸 애써 외면했다. 나는 교직원이나 공무원을 좋아..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1) 합격 전화를 받고, 그냥 거절해버릴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전화해 주신 분이 나랑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하셨다. 게다가 고민할 시간도 충분히 준다고 하시니 이 부분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스타트업 회사는 졸업 하고, 근로장학생 끝내고 오겠다는 나를 하루라도 빨리 데려오려고 하였다. 그리고 뭔가 급해 보였다. 한 쪽은 조급해보이고 한 쪽은 느긋해 보인다. 그러니 느긋한 곳에 끌렸다. 나를 비싼 연봉에 모셔오신 사장님께선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있길 바랐다. 하지만 난 그 값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만둘 땐 내 적성 타령을 하며 그만두었다. 그리고 교직원 생활이야 말로 딱 내 적성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아름다운 마무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추후에 우린 다시 만나게 되며, 사장님은 그 때의 원수(?)를..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0) 교직원 면접도 꽤 잘본 것 같았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박수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면접관님들도 내게 굉장히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발표는 나지 않았다. 역시 교직원의 벽은 높다고 생각하며, 스타트업에 출근하기로 하였다. 신생 회사 특유의 분위기에 설렜다. 병특에서의 고생이 드디어 보상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난 웹을 전혀 모르는 사람인 데, 웹 페이지 구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워드프레스나 윅스 같은 걸로 구축할 것을 말했으나, 반려되었다. 그런 프레임워크를 쓰면 커스터마이징이 어렵고 느리다는 이유였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리고 사장이 생각하는 내용이 내겐 너무 어려웠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그렇다. 난 팀..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9) 대학원 스토리가 거의 끝났다. 간단하게만 말하자면 난 학회 복이 좀 있는 편이었다. 산업기능요원하기 전에도 제주도와 프랑스를 다녀온 기억이 있다. 프랑스 니스에 갔는 데, 이 때 기억이 진짜 너무 좋아서 박사도 하려고 하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했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 했다. 영어라도 열심히 했더라면 미래가 달라졌을까? 모르겠다. 허접한 논문 써서 제주도도 다녀오고, 방장형이 자기 논문의 2저자로 챙겨줘서 팔자에도 없던 프랑스를 다녀왔다. 이 시기에 알게된 프랑스 선교사님과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살면서 프랑스 갈 일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때의 추억 역시 내 보물 중 하나다. 청년취업아카데미라는 곳에서 교육생을 모집했다. 취업 관련 교육이라니 나도 참석했다. 설문지를 하길래 난..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8) 모든 글에는 형식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 논문은 더욱 그랬다. 어떤 학교에서 누가 썼든 간에 석사학위논문인 이상 그에 맞는 격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난 그 부분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생각나는 데로 갈겨 적었다. 결과는? 당연히 핀잔을 들었다. 학부생 기말고사 레포트 만도 못 하다는 말을 들었고, 이건 논문이 아니라고 한다.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논문을 전부 찢어버리고 혼자서 욕설도 했다. 이 때 대학원을 포기하려고 했다.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다 내가 잘못했다고 한다. 그게 더 기분나쁘고 자존심이 상했다. 온갖 원망과 나쁜 생각들이 들었다. 그냥 때려치려고 했다. 아내한테 여러모로 미안하다. 난 툭하면 뭔갈 그만둔다고 말했다. 요즘도 그러는 편이다. 아니 요샌 아내가 그만두라고 말해주는 편이다. ..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7) 이 시리즈가 이렇게 길어질 준 몰랐다. 난 P이기도 하고, 폭발형이기도 하니 삘받을 때 얼른 써놔야겠다. 근데 이렇게 쓰다보니 중간중간 놓치게 되는 재밌는 일화들을 쓸 기회가 없어서 아쉽다. 이 것들도 나중에 꼭 써야지. --- 대학원 복학 전 교수님을 찾아뵀다. 원래 연구실 문화는 평일은 9 to 10이었고 토요일은 9 to 6였다. 빨간날만 쉬게 해줬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방장형까지 졸업했고, 나머지 동기들은 자퇴해서 아무도 없었다. 파트타임하는 분 1명만 있었고, 내가 복학하게 된 것이다. 결혼 당시 화환도 보내주셨기에 그에 대한 감사 인사도 드렸다. 그리고 이번에 복학 예정인데, 이전처럼 풀타임 생활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을 하기도 했고, 생계문제도 있다고 했다. 물론 전부 핑계다. ..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