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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소실 소설의 세계

드넓은 평야와 향긋한 공기내음을 미처 음미하기도 전에, 영문도 모를 거대한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 들인다. 

블랙홀을 안다면 어떤 상황인지 알겠지만 이들은 이게 뭔지 모른다.

"흑마법인가?"

온 몸이 푸른색으로 뒤덮인 새끼 드래곤은 흥미롭다는 듯이 앞을 응시하였다. 그나저나 이 녀석의 이름은 왜 데미안이었지? 이 녀석 옆에 엄청 잘생긴 엘프가 있긴 한데, 얜 누구지? 잠깐 여기는 내가 20년전쯤에 창조한 세계아냐? 그럼 쟤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갑자기 새하얀 빛이 곳곳에서 뿜어져 나왔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눈을 떴다.

"꿈인가?"

내가 중학생 때 쓰다가 만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의 끝은 왠지 슬퍼 보였다. 그들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과 사색에 잠겼다. 

"꿈 아닌 데? 야~ 너 정말 무책임한 거 아냐?"

꿈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있는 데,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이 방엔 분명 나 혼자 있다. 옆 방엔 아내가 자고 있지만 이건 아내의 목소리가 아니다. 귀신이나 가위눌림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청량하고 맑은 목소리. 별 두려움 없이 옆을 돌아보니 웬 낯선 여자가 내 옆에 앉아 있다. 여자는 아까 봤던 엘프의 동족으로 보였다. 백옥 같은 피부에 금빛 눈동자와 금빛에 가까운 노란 머리칼이 인상깊었다. 눈동자는 금빛같으면서도 녹색같은 신비로운 색깔이었다. 누가봐도 귀신은 아니었다.

"거두절미하고, 넌 이제부터 네가 싼 똥을 치우러 다닐거야."

난 아무 말도 안 했는 데, 이 엘프는 혼자서 떠들기 시작했다.

"야, 근데 인간적으로 주인공 이름이 데미안이 뭐냐, 데미안이. 너 데미안 읽어 본 적은 있냐?"

얕잡하 보는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며 말하지만 기분 나쁘진 않았다. 마치 오랜 친구와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편한 기분을 느끼며 편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누구이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얘기하고 싶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런 말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 그거? 중학생 때 헤르만 헤세의 환상 동화집을 보며 문학 겉멋이 좀 들었거든. 그래서 거장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인 데미안에서 따왔지. 네가 말한 데로 무슨 내용인지도 사실 모르겠어. 그래도 이름 멋지지 않나?"

엘프는 한심하다는 듯 날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근데 이거 정말 꿈 아니야? 이 엘프는 뭐지? 이 녀석도 내가 창조한 캐릭터인가? 아까 봤던 데미안같은 캐릭터일까? 아니면 내가 본 여러 작품들의 조합으로 만들어 낸 환상일까? 아니면 글자 그대로 이세계 엘프일까? 잘 모르겠다. 

"궁금한 건 많겠지만, 일단 일부터 하자고. 정신 차리고, 어서 가서 데미안부터 구하러 가야지. 그 바보 지금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이니까!"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주변의 공간이 전부 일그러졌다. 아니, 나만 거기서 쏙 빠져나왔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우주 백과 사전 같은 곳에서 볼법한 우주 세계가 내 앞에 펼쳐지나 싶더니, 알 수 없는 프렉탈 도형들이 내 앞에서 춤을 춘다. 나는 지금 어딘가로 아주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 것들이 춤 추는 게 아니고 내가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뜨니 내 앞의 여자, 아니 남자가 나를 보고 있다. 그래, 이 녀석은 여자가 아니었지. 내가 창조한 또 다른 캐릭터였어.

 

"제노인트...."

 

엘프는 눈을 깜빡이며 개구쟁이처럼 웃는다. 내 머리를 헝클더니 엄지를 척하고 들어 올린다.

 

"이제야 기억해주네. 멍청한 주인아. 이제 다왔어! 얘를 꼭 구해야 해!"

 

데미안을 꼭 구해야 한다라... 왜지?

 

데미안은 내가 처음 쓴 소설이 아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난 초6때 처음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은 완결도 냈다. 내가 완결된 소설은 디x블로x라는 게임의 마법사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전형적인 용두사미였다. 그래도 완결은 냈다. 내가 그 게임의 엔딩을 봤기 때문이다. 그 길로 수많은 소설을 만들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완결을 내지 못 했다. 어떤 소설은 주인공들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조악하게 완결을 냈다. 이 소설은 중학생때 쓴 소설이고 완결은 커녕 사건 전개도 엉망이었다. 데미안이라는 이름때문인가? 아니면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 살고 있어서? 모르겠다.

 

엄청난 굉음이 귀를 찌른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와 제노인트는 어느새 일행 사이에 서있었다. 블랙홀은 바로 눈 앞까지 도래했다.

 

"빨리!!!!"

 

제노인트, 아니 제노의 외침이 다급하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 여긴 소설이고, 이 소설은 내가 지었잖아. 일단 생각을 하자. 자 앞으로 어떻게 할까?

 

거짓말처럼 굉음이 사라졌고, 블랙홀은 점점 작아졌다. 공간들이 일그러지더니 눈 앞에 전혀 다른 풍경들이 펼쳐졌다.

 

여기서부턴 당신이 이야기를 써야 한다. 우리를 구하기 위해선

당신의 상상력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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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예수님도 등장하고

뭔가 '이야기'를 주제로 멋지게 쓰고 싶었는 데, 일단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우주의 팽창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고 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들이 형상화되고 그 것들이 우주 끝자락에 태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런 상상을 해본다.

 

baby blue dragon behind plain front of galaxies

짧은 영어실력으로 데미안을 형상화해봤다. 내가 원하는 모양은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올려본다.

 

 

2023-06-09

차라리 이 녀석이 데미안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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