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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박사네 별빛 코스 요리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한 줄 평 : 천문학자는 별을 볼 필요가 없다. 왜냐면 그들은 이미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이다.

 

정말 아름다운 에세이다. 재밌고 가슴을 울리면서 유익하다. 버릴 문장이 없고 문단들이 모두 별처럼 빛난다. 너무 아름다워서 노트에 계속 옮겼다. 너무 많이 옮겨서 나중엔 내가 먼저 지쳤다.

 

나와 박사님은 공통점이 있다. 대학원을 졸업했다는 것과 강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박사님이 나보다 훨씬 고생하셨겠지만 그래도 공감 가는 내용들이 많아 즐거웠다. 박사님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분들도 많은 위로와 도전을 받을 것 같다. 아래의 문장에 공감을 갖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 이 책에는 이런 아름 다운 문장들이 많다.

 

다시 새로움을 향해 떠나야 할 때,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과거의 나를 찾아간다. 과거의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토닥여주고, 쓰다듬어주고, 따뜻한 밥 한술 먹인 뒤 과감히 등 떠밀어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준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계기로 천문학에 발을 들여놓으신 박사님. 책을 읽을수록 박사님의 풍부한 문장력과 해박한 지식에 푹 빠지게 된다. 순수하면서 무해한 이 과학자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순간, 무미건조한 중년 아저씨의 눈에서 반짝, 소년이 지나갔다.

 

논문을 읽기도 쓰기도 벅차셨을 것이다. 그런 치열한 틈 속에서 쌓은 아름다운 문장들에 감탄하게 된다.

 

어린 왕자는 해 지는 광경이 좋다고 했다. 나도 좋아한다. 특히 여름철 지루한 장마 끝의 노을을 사랑한다. 마치 솜사탕을 여기저기 헤쳐놓은 듯 색깔도 높이도 서로 다른 구름층이 여러 갈래로 휘몰아치다 갑자기 멈춘 듯한 하늘. 그 역동적인 하늘에 내려앉는 노을은 어찌나 붉고 또 어찌나 강렬한 황금색인지. 그렇게 황홀한 황혼은 태양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렵다. 지구에서 태어난 나를 칭찬한다.

 

문장력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해박한 지식과 어우러진 풍부한 문장들은 환상적이다.

 

걷거나 의자를 옮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해 지는 광경을 오래도록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수성이다. 그곳의 하루는 아주 길어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88일이나 걸린다. 해가 지고 나면 다시 88일간의 긴 밤이 시작된다. '동짓날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 내어 두었다가 님이 오시는 날 굽이굽이 펴지 않아도' 퍽 괜찮을 것 같다.

 

박사님이 강조하지 않으셔도 독자들은 이미 우주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박사님이 강조해 주시니 우주를 더 사랑하게 된다. 막연한 흥미를 느끼던 우주를 더 깊게 사랑하게 됐다.

 

당신이 꼭 필요하다. 천문학자가 아니라도 우주를 사랑할 수 있고, 우주 탐사에 힘을 보탤 수 있다. 우주를 사랑하는 데는 수만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

 

이 책은 단순 에세이로 부르고 싶지 않다. '어떤'책이라고 박사님도 스스로 말씀하셨다. 박사님이 쓰셨고, 여러 가지 맛이 나며 아름답다. 그래서 서평 제목을 "박사네 별빛 코스 요리"라고 지었다.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고, 삶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안갯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되긴 되었다.

 

심채경 박사님의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지만 줄이고 줄였다. 나도 언젠간 이런 맛있고 아름다운 책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