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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完)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8)

모든 글에는 형식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 논문은 더욱 그랬다. 어떤 학교에서 누가 썼든 간에 석사학위논문인 이상 그에 맞는 격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난 그 부분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생각나는 데로 갈겨 적었다. 결과는? 당연히 핀잔을 들었다. 학부생 기말고사 레포트 만도 못 하다는 말을 들었고, 이건 논문이 아니라고 한다.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논문을 전부 찢어버리고 혼자서 욕설도 했다. 이 때 대학원을 포기하려고 했다.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다 내가 잘못했다고 한다. 그게 더 기분나쁘고 자존심이 상했다. 온갖 원망과 나쁜 생각들이 들었다. 그냥 때려치려고 했다.

 

아내한테 여러모로 미안하다. 난 툭하면 뭔갈 그만둔다고 말했다. 요즘도 그러는 편이다. 아니 요샌 아내가 그만두라고 말해주는 편이다. 하여튼 이 때도 아내한테 그만둔다고 씩씩 거렸다. 아내가 그만두라고 하자 아차 싶었지만, 짜증나기에 그만두려고 했다. 하지만 학교에 문의해보니 등록금 환불이 별로 안 된단다. 그래서 아내한테 사죄하고 다시 시작했다. 이 때 실질적인 솔루션을 하나 들었는 데, 바로 얼굴 인식 관련 학회 논문의 서론만 100개를 읽어보라는 것이다.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 학기 만에 졸업해야 하는 데, 무슨 수로 100개를 읽는단 말인가!?

 

다행히 논문을 100편 읽는 게 아니고 서론만 100편 읽는 거라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읽혔다. 나중엔 글의 형식만 보고 내용은 생략했다. 그러자 내가 뭘 잘못했는지 눈에 보였다. 그래도 글은 여전히 써지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아이디어가 팡 떠올라 한 하루이틀만에 다 썼던 것 같다. 교수님께 다시 보여드리니 좀 더 좋게 봐주셨다. 글이 꽉꽉 차있어야 한다고 하셔서 글도 꽉 채워넣었다. 멀리서 봐도 논문, 가까이서 봐도 논문스러웠다.

 

이 시기는 자리를 잡지 못한 시기라 걱정도 많았지만, 놀러도 많이 다닌 시기였다. 대전, 부산 그리고 미국을 다녀왔다. 원랜 프랑스를 가려고 했으나 이 시기에 작성한 논문이 빠꾸를 먹어서 포기했고,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을 신청했다. 무료로 영문도 첨삭해주니 피바다가 되었지만 잘 고쳐서 냈고, 승인이 났다.

 

아내랑 이 때 많이 싸웠고, 아내가 이 때 아팠던 게 되게 오래 갔었다. 하지만 이 때의 기억과 추억은 지금도 우리에게 귀중한 보물이다. 이 때 돈도 제일 많이 썼던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취업. 난 이 때 에트리에 가고 싶었다. 박사는 아니지만 석사만 졸업해도 연구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졸업한 학교는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급이 아니었다. 한참 밑이었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이었다. 하지만 난 이 꿈을 이룰 수 있는 한줄기 희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