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가 직전에 일한 회사의 이야기를 할 차례다. 난 여기서 2년을 근무하였다. 그 전에 교직원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조금만 더 적어보고자 한다. 이 시리즈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계속 놀라는 중이다. 나중에 책으로 내거나 브런치로 내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 사람들이 좋아하면 돈도 벌 수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욕심도 부려본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명필가 분들은 많다. 그 분들에 비하면 내 글은 글로 된 똥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재미나 위로를 느끼며, 또한 나 역시 이 글을 쓰며 공감을 받고 싶기에 글을 적는다.
앞의 글에서 교직원 생활에 대해 적은 부분 중, 같이 점심먹고 수다떠는 게 즐겁다는 말을 했었다. 이게 처음엔 좋았는 데, 관계가 틀어지고 나니 이 것 만큼 지옥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점심 시간은 쉬는 시간이다. 밥 먹고 잠을 자거나, 그냥 잠을 자거나 기도를 하는 시간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선 그게 아니었다. 점심은 밥을 먹는 시간이며 직원 간의 수다로 재충전을 하는 시간인 것이다. 할 말이 없거나 관심도 없는 주제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피곤한 데 쉬지도 못 한다. 거기다가 계속 얻어 먹기만 하니 팀장님이 눈치를 주기도 하였다.
눈치를 은연 중에 준 게 아니고 대놓고 준 것이다. 근무 시간에 갑자기 일어나 "~~쌤 이제 월급 받지 않았어?" 그 날 난 울며 겨자먹기로 커피를 샀다. 한 두 명도 아니다. 이 때 한 번 샀고, 살아 남기 위해서 한 번 더 샀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샀을 땐 돈을 더 많이 썼던 것 같다. 더 슬픈 건 이렇게 돈을 써도 변한 것 없었단 사실이다.
이 곳은 식비가 무료가 아니었다. 병특으로 있던 곳이나 스타트 업에선 식비가 공짜였다. 병특으로 있던 곳은 현금으로 주기까지 하였다. 작은 돈이지만 이 돈으로 근처 마트가서 아내 대신 장을 보는 재미도 쏠쏠 했다. 자전거 타고 달려 가서 장 보고, 집에 가서 아내 얼굴 보고 밥 먹고 잠깐 자고 가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월급 밀린 거랑 사장의 구시대적 마인드만 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얼굴도 익숙해져서 편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여기선 아니었다. 식비가 무료가 아닐 뿐 더러 같이 밥을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눈치를 주는 곳이었다. 계약직 직원(그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2년 정도 계약직으로 일한다. 조교라고 불렀다)이 점심을 먹지 않아도 그 직원에 대한 뒷담화가 존재하였다. 그 직원은 결국 며칠 지나고 나서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거기에 회비가 존재했는 데, 계약직 직원들은 5천원이고, 정규직원 1만 5천원이었다. 난 수습직원이었지만 정규직만큼 돈을 냈다. 그 것도 해고 통보 받은 그 달에도 그 돈을 내고 나갔다. 마지막 달은 그냥 안 낼까 했지만 마무리를 잘 지으라는 아내의 말에 따라서 내고 갔다. 회비 낸 게 아까워서 그랬는 진 몰라도 비치된 밀크티나 스낵들은 막판에 가서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워크숍이었나 그런 것도 있었다. 이렇게 모은 회비들 가지고 다같이 워크숍을 간다고 했다. MT같은 거 였다. 다 같이 모여서 영화도 보고, 워크숍도 간다고 한다. 이 워크숍 계획을 나 포함 3명의 신입 직원이 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전에 그만 두게 되어서 워크숍을 가지 않았다. 이 거 때문에 아내한테 여행계획도 물어 보고 호들갑도 떨었는 데, 아내한테 지금도 미안하다.
사회 생활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나 하지만 직전 회사나 지금 회사에선 그런 거 없었다. 직전 회사에선 다 같이 점심을 먹긴 하였으나 필수가 아니었고, 지금 회사는 각자 알아서 도시락 싸먹는다. 전혀 터치하지 않는다. 가끔 팀장님이나 누군가 밥을 먹자고 하면 눈치 없이 얻어 먹을 수 있다. 혹은 내가 사주고 싶다면 내가 사주기도 한다. 움츠려드는 것 따윈 전혀 없다.
이젠 이 교직원 이야기를 정말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결론적으론 나랑 맞지 않는 곳이며, 그 분들은 잘못한 게 전혀 없다. 난 교회 공동체같은 분위기를 생각했던 것 같다. 소외된 사람에겐 다가가 주고, 마음 상한 것이 있다면 서로 풀면서 같이 가는 공동체. 겉으로 보기엔 그래 보였지만 어쨌든 이 곳은 회사다.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것이었고, 잘못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쓴뿌리가 없는 건 아니다. 나보다 나이 어린 분한테 배운 업무가 있는 데, 처음엔 잘 알려주다가 똑같은 걸 또 물어보니 떠 먹여줘야 아냐면서, 자기가 알려준 레퍼런스는 왜 안 보고 물어보냐고 핀잔을 들었다. 친근하게 얘기하고 나름 친했다고 생각했으나 난 분명 선을 넘은 것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만든 시스템에 대해서 다른 팀 팀장님과 얘기할 일이 있었는 데, 의사 소통이 너무 안 됐다. 근데 내 옆에 있던 팀장님이 나랑 비슷한 말을 했는 데, 이 분이 이번엔 알아 들은 것이다. 난 사실 지금도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그 다른 팀 팀장님은 내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건 이렇게 이렇게 말하셔야 하는 거에요" 하는 데, 기분이 몹시 나빴던 기억이 있다. 뭐, 내가 잘못한 거겠지 싶지만 마음은 여전히 안 좋다. 하나 하나 나열하면 끝도 없다. 그 분들도 나에 대한 쓴뿌리가 여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나도 나를 위해서라도 이젠 이 감정들을 흘려 보내야 겠지. 이 글을 계기로 이 감정들이 잘 흘려보내졌으면 좋겠다.
나의 퇴사가 결정되고, 내가 여기 저기 면접을 볼 동안, 그 분들은 너무 즐거워보였다. 워크숍에 가기 전, 그리고 가고 난 후 너무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는 날, 사람들의 얼굴은 어딘가 홀가분해보였다. 심지어 내 기분도 홀가분했다.
내가 그만두게 된 날, 그러니까 12월 31일. 아내는 너무나 서럽게 울었다. 하지만 2월 1일부로 다른 곳에 출근을 하게 되자 조금은 마음에 안정을 얻은 듯 하였다. 이 이후에도 아내는 내 직장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했다. 어쩌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하면 확실히 스트레스가 많이 줄은 것이 눈에 보인다.
생각해보니 1월 2일부터 1월 31일까지 총 3 곳을 면접봤는 데, 여기 이야기도 좀 해야할 것 같다. 하여튼 교직원 이야기는 이제 정말 끝내야 겠다. 다른 글을 통해서 그 때의 이야기를 또 할진 모르겠다. 그 때 DBMS 실력이 많이 늘기도 했고, 그 때 겪은 경험들이 지금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일기에선 그만할란다. 다음 이야기는 면접이다. 그 다음 직전 회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지만 결론은 똑같다. 개발자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음을 통감하고, 가르치는 걸로 직업을 바꿨고, 그 직업이 내겐 천직이라는 것이다. 지금이 14니까, 아마 20 전후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끝맺는 시점은 제작년에 강사로 입사한 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사가 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일들도 드라마틱 했는 데 그 부분도 일기로 쓸 수 있으면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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