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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完)

나는 왜 프로그래머를 그만두었는가? (12)

결과적으로 나와 팀장님은 웃으면서 헤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분이나 같이 일했던 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 분들은 그 곳이 맞는 곳이고, 나는 그 곳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계속해서 글을 이어나가 보자.
첫 회식때 난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며 빠지려고 했다. 사실 머리가 아픈 건 아니었고, 금요예배 가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빨리 퇴근해서 아내랑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교직원은 그래도 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저찌 회식에 가게 되었다. 아내한테 말하니 얼른 가라고 해서 갔다. 술을 권했으나 마시지 않았고, 2차는 커녕 팀장보다 먼저 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 팀장님의 표정이 안 좋았는 데 난 그걸 애써 외면했다.

나는 교직원이나 공무원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공무원은 동사무에서 일하는 불친절한 직원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친절한 분들을 많이 만나서 이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보는 공무원과 교직원의 세계는 간단해보였다. 어렵거나 복잡한 문제는 전화를 돌리거나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고 말하는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철밥통이기에 좀 마음대로 해도 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간과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가장 큰 것은 난 수습직원 신분이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정규직처럼 환영해주었지만 어쨌든 내 신분은 수습직원이었다. 그렇기에 아직은 비정규직인 것이다. 스타트업에선 회사 자체가 망할 일은 있어도 일단 정규직이었다. 사실상 팀장급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선 비정규직에 말단이었다. 나보다 어린 분도 정규직으로 계셨으니 내 처지가 좀 더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철밥통인 곳이 조직문화가 강하다는 걸 간과했다. 신입 특유의 빠릿함으로 야근도 많이 하고, 주말에도 나오고,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야 했다. 혼나더라도 다가가야만 했고, 회식이든 사적인 식사든 퇴근 후 모임이든 다 참석해야만 했다.
빠릿하고 적극적이어야 하는 신입이 회식을 빠지다니, 팀장님 입장에선 괘씸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 날 나는 불려갔다.
무슨 말을 했는지 이젠 기억이 안 난다. 다만 하나는 기억난다. 내가 수습직원이라는 걸 기억하라는 것과 지식이 딸리면 혼자서 공부를 해서라도 따라오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 왔을 땐 나보고 인문학 책보라던 사람이 이젠 공부를 하란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그 학교의 졸업생보다 실력이 딸리다는 걸 들킨 것이다. 거기다가 업무적인 말귀도 계속 못 알아먹으니 화가 난 것 같았다. 이렇게 쓰고나니 정리가 된다. 한없이 친절하고 뭐든지 받아줄 것 같았던 팀장님은 내게 점점 실망하셨던 것이다. 신나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다가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 들어?"라고 살짝 불편해하셨다. 그 때 엄청 위축됐다. 왜냐면 입사 초기에 팀장님은 내게 '오버 스펙의 능력자를 모셔왔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내 실체가 들통나니 어쩔 줄 몰랐다.

나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말에 병적으로 위축된다. 옛날부터 많이 혼나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주변의 기대를 받다가 실망을 받았을 때의 수치심들이 내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여기선 단순히 수치심만 당하고 끝나는 게 아니고 짤릴 수 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아이러니한 건 난 끝까지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근도 해보고 밤도 새봤다. 주말에도 나와봤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자 욕을 먹었다. 주말에는 나왔으나 너무 늦게 출근을 해서 정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일했다. 오히려 나보다 좀 더 일찍 출근했던 계약직 분은 팀장님이랑 마주쳐서 칭찬도 들었단다. 즉 팀장님 눈엔 실력도 없는 게 칼퇴나 하고, 야근 하더라도 효율도 안 나는 골칫거리 였을 것이다.

이럴 거면 교직원을 안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다. 살아 남기 위해서 아둥바둥하는 건 일반 회사에서도 하는 거다. "인프라 다 갖춰진 곳에서 뭐하러 그러지? 있는 것만 유지보수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이런 당혹감에 머리를 싸매며 지냈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공부가 더 안 됐던 것 같다. 그리고 뭐부터 공부해야할지도 몰랐다. SQL 문법을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고, 회사 소스를 가져오자니 뭐부터 가져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전 처음보는 프레임워크다보니 집에서 어떻게 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깔고 싶지도 않았다. 회사 프로그램을 집에서 뭐하러 깔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처음엔 기대를 받았으나 점점 욕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회식에 참석하지 않은 걸 계기로 크게 혼났다. 그 전부터 위축되었으나 점점 더 위축되기 시작했다. 말도 안 하고 일만 했다. 팀장님한테 가서 말할 때는 내가 말할 대사를 프린트하고 그걸 읽고 또 읽은 다음에도 말을 못 했다. 너무 무서웠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너무 화기애애하게 잘 지냈다. 팀장님 입장에선 그게 더 불편하셨던 것 같다. 팀 구성원들이 나때문에 불편해했던 것 같다.

너무 견디기 힘들었지만 견뎌야 했다. 차라리 수습기간은 채우고 짤려야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었다. 모든 정신적 문제는 기도로 해결할 수 있다고 굳게 믿어온 나는 결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과에 상담을 받았다. 상담 결과, 난 지극히 정상이며 이런 문제는 사회 생활을 많이 해야 해결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한결 홀가분 마음으로 잠을 잤고 다음 날 출근했다. 역시 출근하니 또 움츠러들었다. 모두가 즐거운 연말인 데 말이다.

재미있게도 그 다음 날 난 12월 31일 해고통보를 받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권고사직이다. 실업급여등을 얘기해봤으나 내 발로 나가길 원했고, 나 역시 납득했다. 진짜 납득 못 했으면 법적분쟁까지 가려고 했으나 나 역시 너무나 그만두고 싶었다. 내가 완벽했는 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싸웠겠지만 나 역시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미안하다 말하며 나의 교직원 생활은 막을 내렸다.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었다. 하지만 고통스럽기도 하고, 써봤자 재미 없을 것 같다.
혹시 떠오르면 또 적겠다.
이걸 쓰면서 생각난 건데, 내게 유일하게 일관되게 잘 해주셨던 분이 계셨다. 원래 내 직속 사수는 팀장님이었으나 이 분이 내 사수가 되어주었다. 내게 화를 내셨으나, 화를 내지 않으셨다. 정확히 말하자면 짜증은 내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언을 해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퇴사할 때 내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쌤이 진짜 잘 되셨으면 좋겠다."
그러고보니 그 분도 강사출신이라고 하던 데... 가벼운 감사인사라도 드려봐야 겠다.

내가 '잘된 것'까진 모르겠지만 '안된 것'은 아니니 인사나 드려야 겠다.
인사드리는 게 도리가 아닐 수도 있으려나?
사실 지금 나도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지금 이 회사에 처음 입사할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 분은 성격이 좀 달라서 그냥 반가워 하고 재미있어 하실 것 같다.
아니다. 연락하지 말자.
교직원의 생태계에서 가십거리 만들면 온 직원이 다 알게 된다.
그게 내게 득인지 실인지 몰라도 여튼 추억은 추억으로 간직할 때가 아름다운 법이다. 그리고 나갈 때 충분히 고마워했으니 그 걸로 된 거다.

그러고보니 스타트업 사장님이 내게 어떻게 갚으(?)셨는지 얘기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덧붙여서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사람들이 재미있게 봤으면 좋겠다.